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NOT GOLF, BUT LOVE

한강 시 추천 [코트와 나]

나는 오십 년 늙고

코트는 이십 년 늙었네

 

서른 살 겨울에 산

 

긴 겨울 외투는 평생 이거면 되겠다 했던

종아리를 덮는 검정색 코트

 

안감은 미어지고

밑단 재봉은 두어 번 터졌다 다시 감쳐지고

양쪽 소맷단에 까만 보풀이

물방울들같이 맺힌 코트

 

오십 년 늙은 내가

이십 년 늙은 코트를 입고

겨울볕 아래로 걸어가네

 

벽에 걸어놓으면

코트는 나를 닮아 어깨가 수긋하고

텅 빈 안쪽 어둠을

안고 있는지 그저

놓아두고 있는지

 

반으로 접어 의자에 걸쳐두면

코트는 나를 닮아

먼지투성이 몸을 곧잘 구부릴 줄 알고

 

어깨를 집고 들어올리면 바닥에 스치며

무겁게 허리를 펼 줄도 알고

 

나는 오십 년 늙고

코트는 이십 년 늙어

 

팔을 뻗으면

소매가 순순히 따라오고

 

깃을 세우면

내 목은 움츠러져 거기 잠기고

 

내가 코트를 입을 때

코트도 나를 입는지

 

겉감이 안감을 당기고

안감이 겉감을 두르듯

 

코트는 나를 안고

나는 코트를 업는지

 

나는 오십 년 늙고

코트는 이십 년 늙어

 

함께 이별한 것 끌어안은 것

간절히 기울어져

붙잡았던 것 그러다

끝내 놓친 것

헤아릴 수 없네

 

나는 오십 년 늙고

코트는 이십 년 늙어

어느 날 헤어질 서로를 안고 업고

겨울볕 속으로 걸어가네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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